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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의 끝에서 한 가지 의심을 남겨 두었다. 칸이 그릇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한·일이 같은 뿌리에서 정반대의 미감으로 갈라진 이유가 디자인 선택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두 의심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곧 한 단어와 마주치게 된다. 한국 공문서의 조직도에 흩어져 있는 빈 셀들. 그동안 의미 없는 칸으로 무심히 부르던 그것들이다.
餘白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가
동아시아 미학에 한 자라도 마음을 둔 이라면, 의미 없는 빈 셀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거친 것인지 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 글자가 차지하는 면적은 종이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글자가 없는 자리 — 餘白(여백)이다. 한국화의 산수도 마찬가지다. 그리지 않은 안개와 허공이 그린 산봉우리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그림이다. 일본의 *間(ma)*도 같은 사유다. 다도의 침묵, 노(能)의 정적, 건축의 공간 — 그 모두가 적극적으로 비어 있는 자리다.
비어 있음은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거주(居住)*다. 무엇이 거기에 살고 있는가. 관계가, 거리가, 긴장이, 위계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이 — 거기에 살고 있다.
조직도의 빈 셀이 그러하다. 그것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다. 원장 셀과 부원장 셀 사이의 빈 공간은, 두 자리 사이의 무엇 — 위계의 거리, 관계의 결, 권위의 무게 — 이 거주하는 자리다. 그 자리를 없애고 "원장 → 부원장"이라고 텍스트로 옮기는 순간, 화살표는 남지만 사이가 사라진다. 정보는 보존되지만, 다른 무엇 — 우리가 아직 명명하지 않은 그것 — 이 사라진다.
그 무엇을 가리키는 글자가 동아시아에 있다. 文이다.
文은 정보가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문서(文書)*라고 부른다. 그런데 文이 무엇인가.
文은 단순히 "글"이 아니다. 그것은 무늬이고, 결이며, 양식이고, 질서의 시각적 현현(顯現)이다. 文化(문화)의 文이고, 文明(문명)의 文이며, 天文(천문)의 文이다. 하늘의 별자리 또한 文이다. 그것이 정보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질서가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文이다.
그러므로 文書란 본래 정보가 적힌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무늬가 새겨진 질서의 표현이다. 의궤(儀軌)가 그러했고, 등록(謄錄)이 그러했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의궤를 펼쳐 보는 일은, "행차에 누가 참가했고 비용이 얼마였는지"를 조회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의례가 올바르게 일어났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어나야 함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정보 검색이 아니라 질서의 현시.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서구의 문서 전통은 — 거칠게 말하면 — 文보다는 *기록(record)*에 무게를 둔다. 사실을 정확히 적어 두어 나중에 조회하기 위한 것. 그러나 동아시아의 文書는 그 자체로 수행적이다. 적어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음으로써 그 질서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작성된다.
禮 — 자리의 윤리학
이 文의 감각의 뿌리에 禮(예)가 있다. 흔히 "예의범절" 정도로 가볍게 번역되지만, 禮는 본래 훨씬 큰 개념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마땅한 자리에 놓이는 일에 관한 사유다.
공자는 政(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正名(정명)*이라 답했다. 이름을 바로잡는 일. 임금을 임금답게, 신하를 신하답게, 아비를 아비답게, 자식을 자식답게 — 각자를 그 자리에 놓는 일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자리에 놓임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가 존재로서 완성된다는 사유. 이것이 동아시아 정치철학의 가장 깊은 층위다.
표 안에 글자를 담는 일은 이 정명의 시각적 구현이다. 원장 셀이 위에 있고 부원장 셀이 아래에 있는 것은 정보 전달의 효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각 자리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확정하는 의례다. 셀과 셀 사이의 선은 단순한 구분선이 아니라 경계 — 분(分)과 분이 만나는 자리 — 이고, 셀의 크기와 정렬과 굵기는 예의 시각화다.
그러므로 한국 공문서의 표는 엑셀의 표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물이다. 엑셀의 표가 데이터의 격자라면, 동아시아 공문서의 표는 질서의 도면이다. 같은 사각형을 그리고 있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다르다. 전자가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라면, 후자는 질서를 현시하는 자리다.
물론 현대 한국 공무원이 보고서를 만들면서 "지금 나는 우주의 질서를 시각화하고 있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30년차 공무원이 본능적으로 "이 표는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그 본능은 단순한 미적 감각이 아니라 수백 년 누적된 정명의 감각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같은 禮, 다른 顯現 — 한·일 분기의 정치철학
이제 1편에서 미뤄 두었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일은 왜 그토록 다르게 갈라졌는가.
답의 실마리는 결재란에 있다. 일본의 *稟議書(린기쇼)*는 결재란이 우측에 세로로 흐른다. 担当 → 係長 → 課長 → 部長 → 役員. 도장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찍힌다. 한국의 결재란은 상단 또는 좌측에 가로로 펼쳐진다. 담당-팀장-과장-국장-차관이 한 줄에 나란히 자리잡고, 도장이 같은 평면 위에 찍힌다.
이 차이는 디자인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두 사회가 정명을 어떻게 시각화하기로 선택했는가의 차이다.
한국의 가로 배치는 모든 결재자가 동시에 한 화면 안에 현전(現前)하는 구조다. 문서를 펼치는 순간, 그 일에 관여한 모든 자리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위계가 있되, 그 위계는 공시적(共時的)으로 드러난다. 조선의 합의제 전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 비변사(備邊司)의 논의, 의정부 삼정승 체제,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삼사(三司)가 임금에게도 諫(간)할 수 있었던 구조. 군주제 안에서도 복수(複數)의 자리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강했던 정치 전통. 한국의 가로형 결재란은 이 감각의 시각적 후예다. 우리는 함께 이 일을 결정했다는 공동성의 표현. 도장 하나가 빠져 있으면 그 부재가 즉시 눈에 띄도록 설계된 양식.
일본의 세로 배치는 정반대의 시간성(時間性) 구조다. 결재가 흘러가는 과정으로 시각화된다. 한국의 결재란이 동시에 펼쳐진 자리들이라면, 일본의 결재란은 순차적으로 통과해 가는 관문들이다. 한국이 공시적이라면 일본은 통시적(通時的)이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根回し(네마와시) 문화가 겹쳐진다. 공식 결재가 올라가기 전에 미리 모든 관련자에게 비공식적으로 양해를 구해두는 관행. 결재란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동안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흐름이 사전에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재란은 합의의 형성이 아니라 합의된 것의 통과 의례다.
이 통시적 감각은 일본의 정치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천황 → 섭정 → 막부 → 다이묘 → 가신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계단식 위임 구조. 명령은 위에서 발원하여 층층이 하강한다. 한국의 삼사가 옆에서 임금을 견제하는 구조였다면, 일본의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구조였다. 그것이 결재란의 시각적 질서로 굳어졌다. 1편에서 언급한 お辞儀ハンコ(상사 쪽으로 살짝 기울여 찍는 도장) 관행이 가능했던 것도 이 안에서다 — 세로 배치는 위가 분명하므로, 위를 향해 고개 숙이는 동작이 도장이라는 물체에까지 투사될 수 있다. 가로 배치에서는 이런 동작이 의미를 갖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두 양식이 같은 禮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정명의 사유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 정명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서 두 사회는 정반대로 갈라졌다. 한국은 자리들의 공존을 보이는 쪽으로, 일본은 자리들의 순서를 보이는 쪽으로. 한국에서 합의는 함께 결정하는 행위에 가까웠고, 일본에서 합의는 함께 통과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1편에서 보았던 미감의 차이 — 일본의 별표 분할과 한국의 표 중첩, 일본의 정밀한 罫線과 한국의 음영 활용, 일본의 여백과 한국의 셀 채움 — 는 모두 이 더 깊은 분기의 결과다. 정치적 무의식이 시각적 미감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결재란이라는 작은 격자 안에 한 사회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 이것이 文의 사유가 도달하는 결론이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가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각화하는가의 압축적 표현이며, *축소된 조정(朝廷)*이다.
다도(茶道)를 YouTube로 만들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결정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정보로 환원될 수 있는가.
다도를 떠올려 보자. 그것을 영상화할 수는 있다. 4K로 찍고, 자막을 달고,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결과물은 정보로서 풍부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이 다도인가. 아니다. 다도의 본질은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 동작으로 차를 내는 것 자체다. 카메라는 동작을 담을 수 있어도 間을 담지 못하고, 자막은 말을 옮길 수 있어도 침묵의 무게를 옮기지 못한다. 영상은 다도를 기록할 수 있지만 되지는 못한다.
文이 그러하다. 어떤 文書는 — 그 그렇게 그려진 모습 그대로가 의미다. 표 안의 표, 빈 셀, 점선과 음영, 미묘한 정렬, 결재란의 가로 펼침이나 세로 흐름.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그 문서가 하고 있는 일을 이룬다. 그것을 텍스트 마크업으로 옮기는 일은 — 어떤 형식으로 옮기든 — 본질적으로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하려는 시도다. 정보로는 보존되겠지만, 文으로는 죽는다.
닫으며 — 그릇만은 아닌 것
이제 1편의 끝에서 미뤄 두었던 의심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었다. 칸은 그릇이지만 그릇만은 아니다. 한·일은 디자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정명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달랐다. 표 안에 글자를 담는 행위는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질서를 현시하는 의례이기도 했다. 빈 셀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 거기에 자리들의 사이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하고 글을 닫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이 모든 것이 고려되지 않은 채로 빠르게 변형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AI는 빈 셀을 읽지 못한다. 마크다운은 餘白을 표현하지 못한다. 전자결재는 가로형과 세로형의 차이를 평탄화한다. 정부는 HWP를 XML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文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다음 글의 자리는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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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白의 정치학 — 표(表)로 읽는 文書 문화 ②
표 안에 글자를 담는다는 것의 의미
지난 글의 끝에서 한 가지 의심을 남겨 두었다. 칸이 그릇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한·일이 같은 뿌리에서 정반대의 미감으로 갈라진 이유가 디자인 선택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두 의심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곧 한 단어와 마주치게 된다. 한국 공문서의 조직도에 흩어져 있는 빈 셀들. 그동안 의미 없는 칸으로 무심히 부르던 그것들이다.
餘白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가
동아시아 미학에 한 자라도 마음을 둔 이라면, 의미 없는 빈 셀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거친 것인지 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 글자가 차지하는 면적은 종이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글자가 없는 자리 — 餘白(여백)이다. 한국화의 산수도 마찬가지다. 그리지 않은 안개와 허공이 그린 산봉우리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그림이다. 일본의 *間(ma)*도 같은 사유다. 다도의 침묵, 노(能)의 정적, 건축의 공간 — 그 모두가 적극적으로 비어 있는 자리다.
비어 있음은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거주(居住)*다. 무엇이 거기에 살고 있는가. 관계가, 거리가, 긴장이, 위계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이 — 거기에 살고 있다.
조직도의 빈 셀이 그러하다. 그것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다. 원장 셀과 부원장 셀 사이의 빈 공간은, 두 자리 사이의 무엇 — 위계의 거리, 관계의 결, 권위의 무게 — 이 거주하는 자리다. 그 자리를 없애고 "원장 → 부원장"이라고 텍스트로 옮기는 순간, 화살표는 남지만 사이가 사라진다. 정보는 보존되지만, 다른 무엇 — 우리가 아직 명명하지 않은 그것 — 이 사라진다.
그 무엇을 가리키는 글자가 동아시아에 있다. 文이다.
文은 정보가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문서(文書)*라고 부른다. 그런데 文이 무엇인가.
文은 단순히 "글"이 아니다. 그것은 무늬이고, 결이며, 양식이고, 질서의 시각적 현현(顯現)이다. 文化(문화)의 文이고, 文明(문명)의 文이며, 天文(천문)의 文이다. 하늘의 별자리 또한 文이다. 그것이 정보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질서가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文이다.
그러므로 文書란 본래 정보가 적힌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무늬가 새겨진 질서의 표현이다. 의궤(儀軌)가 그러했고, 등록(謄錄)이 그러했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의궤를 펼쳐 보는 일은, "행차에 누가 참가했고 비용이 얼마였는지"를 조회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의례가 올바르게 일어났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어나야 함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정보 검색이 아니라 질서의 현시.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서구의 문서 전통은 — 거칠게 말하면 — 文보다는 *기록(record)*에 무게를 둔다. 사실을 정확히 적어 두어 나중에 조회하기 위한 것. 그러나 동아시아의 文書는 그 자체로 수행적이다. 적어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음으로써 그 질서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작성된다.
禮 — 자리의 윤리학
이 文의 감각의 뿌리에 禮(예)가 있다. 흔히 "예의범절" 정도로 가볍게 번역되지만, 禮는 본래 훨씬 큰 개념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마땅한 자리에 놓이는 일에 관한 사유다.
공자는 政(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正名(정명)*이라 답했다. 이름을 바로잡는 일. 임금을 임금답게, 신하를 신하답게, 아비를 아비답게, 자식을 자식답게 — 각자를 그 자리에 놓는 일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자리에 놓임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가 존재로서 완성된다는 사유. 이것이 동아시아 정치철학의 가장 깊은 층위다.
표 안에 글자를 담는 일은 이 정명의 시각적 구현이다. 원장 셀이 위에 있고 부원장 셀이 아래에 있는 것은 정보 전달의 효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각 자리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확정하는 의례다. 셀과 셀 사이의 선은 단순한 구분선이 아니라 경계 — 분(分)과 분이 만나는 자리 — 이고, 셀의 크기와 정렬과 굵기는 예의 시각화다.
그러므로 한국 공문서의 표는 엑셀의 표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물이다. 엑셀의 표가 데이터의 격자라면, 동아시아 공문서의 표는 질서의 도면이다. 같은 사각형을 그리고 있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다르다. 전자가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라면, 후자는 질서를 현시하는 자리다.
물론 현대 한국 공무원이 보고서를 만들면서 "지금 나는 우주의 질서를 시각화하고 있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30년차 공무원이 본능적으로 "이 표는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그 본능은 단순한 미적 감각이 아니라 수백 년 누적된 정명의 감각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같은 禮, 다른 顯現 — 한·일 분기의 정치철학
이제 1편에서 미뤄 두었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일은 왜 그토록 다르게 갈라졌는가.
답의 실마리는 결재란에 있다. 일본의 *稟議書(린기쇼)*는 결재란이 우측에 세로로 흐른다. 担当 → 係長 → 課長 → 部長 → 役員. 도장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찍힌다. 한국의 결재란은 상단 또는 좌측에 가로로 펼쳐진다. 담당-팀장-과장-국장-차관이 한 줄에 나란히 자리잡고, 도장이 같은 평면 위에 찍힌다.
이 차이는 디자인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두 사회가 정명을 어떻게 시각화하기로 선택했는가의 차이다.
한국의 가로 배치는 모든 결재자가 동시에 한 화면 안에 현전(現前)하는 구조다. 문서를 펼치는 순간, 그 일에 관여한 모든 자리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위계가 있되, 그 위계는 공시적(共時的)으로 드러난다. 조선의 합의제 전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 비변사(備邊司)의 논의, 의정부 삼정승 체제,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삼사(三司)가 임금에게도 諫(간)할 수 있었던 구조. 군주제 안에서도 복수(複數)의 자리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강했던 정치 전통. 한국의 가로형 결재란은 이 감각의 시각적 후예다. 우리는 함께 이 일을 결정했다는 공동성의 표현. 도장 하나가 빠져 있으면 그 부재가 즉시 눈에 띄도록 설계된 양식.
일본의 세로 배치는 정반대의 시간성(時間性) 구조다. 결재가 흘러가는 과정으로 시각화된다. 한국의 결재란이 동시에 펼쳐진 자리들이라면, 일본의 결재란은 순차적으로 통과해 가는 관문들이다. 한국이 공시적이라면 일본은 통시적(通時的)이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根回し(네마와시) 문화가 겹쳐진다. 공식 결재가 올라가기 전에 미리 모든 관련자에게 비공식적으로 양해를 구해두는 관행. 결재란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동안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흐름이 사전에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재란은 합의의 형성이 아니라 합의된 것의 통과 의례다.
이 통시적 감각은 일본의 정치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천황 → 섭정 → 막부 → 다이묘 → 가신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계단식 위임 구조. 명령은 위에서 발원하여 층층이 하강한다. 한국의 삼사가 옆에서 임금을 견제하는 구조였다면, 일본의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구조였다. 그것이 결재란의 시각적 질서로 굳어졌다. 1편에서 언급한 お辞儀ハンコ(상사 쪽으로 살짝 기울여 찍는 도장) 관행이 가능했던 것도 이 안에서다 — 세로 배치는 위가 분명하므로, 위를 향해 고개 숙이는 동작이 도장이라는 물체에까지 투사될 수 있다. 가로 배치에서는 이런 동작이 의미를 갖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두 양식이 같은 禮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정명의 사유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 정명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서 두 사회는 정반대로 갈라졌다. 한국은 자리들의 공존을 보이는 쪽으로, 일본은 자리들의 순서를 보이는 쪽으로. 한국에서 합의는 함께 결정하는 행위에 가까웠고, 일본에서 합의는 함께 통과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1편에서 보았던 미감의 차이 — 일본의 별표 분할과 한국의 표 중첩, 일본의 정밀한 罫線과 한국의 음영 활용, 일본의 여백과 한국의 셀 채움 — 는 모두 이 더 깊은 분기의 결과다. 정치적 무의식이 시각적 미감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결재란이라는 작은 격자 안에 한 사회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 이것이 文의 사유가 도달하는 결론이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가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각화하는가의 압축적 표현이며, *축소된 조정(朝廷)*이다.
다도(茶道)를 YouTube로 만들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결정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정보로 환원될 수 있는가.
다도를 떠올려 보자. 그것을 영상화할 수는 있다. 4K로 찍고, 자막을 달고,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결과물은 정보로서 풍부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이 다도인가. 아니다. 다도의 본질은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 동작으로 차를 내는 것 자체다. 카메라는 동작을 담을 수 있어도 間을 담지 못하고, 자막은 말을 옮길 수 있어도 침묵의 무게를 옮기지 못한다. 영상은 다도를 기록할 수 있지만 되지는 못한다.
文이 그러하다. 어떤 文書는 — 그 그렇게 그려진 모습 그대로가 의미다. 표 안의 표, 빈 셀, 점선과 음영, 미묘한 정렬, 결재란의 가로 펼침이나 세로 흐름.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그 문서가 하고 있는 일을 이룬다. 그것을 텍스트 마크업으로 옮기는 일은 — 어떤 형식으로 옮기든 — 본질적으로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하려는 시도다. 정보로는 보존되겠지만, 文으로는 죽는다.
닫으며 — 그릇만은 아닌 것
이제 1편의 끝에서 미뤄 두었던 의심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었다. 칸은 그릇이지만 그릇만은 아니다. 한·일은 디자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정명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달랐다. 표 안에 글자를 담는 행위는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질서를 현시하는 의례이기도 했다. 빈 셀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 거기에 자리들의 사이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하고 글을 닫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이 모든 것이 고려되지 않은 채로 빠르게 변형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AI는 빈 셀을 읽지 못한다. 마크다운은 餘白을 표현하지 못한다. 전자결재는 가로형과 세로형의 차이를 평탄화한다. 정부는 HWP를 XML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文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다음 글의 자리는 거기다.
< #367 >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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